참된 기도는 나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생명의부양자 작성일19-03-28 07:38 조회1,205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참된 기도는 나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창세기18장은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과 그가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반부는 소돔의 구원을 위해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간절한 마음으로 타협의 간구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하나님에게 거듭 간청하여 소돔 성을 멸망시키지 않는 조건으로 의인 오십 명에서부터 시작하여 사십 오명, 사십 명, 삼십 명, 이십 명, 마침내 열 명까지 양보를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18:32)
당신은 아브라함의 끈질긴 간구 장면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습니까? 그가 하나님 앞에 너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중보기도자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하잘것없고 가치 없는 사람을 위해서 간구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간구로 인해 하나님에게 미움을 받으면 갈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붙잡고 수치당할 것을 각오하는 모험을 시작합니다. 참된 중보 기도자는 이처럼 수치를 무릅쓰고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아브라함의 수치스런 중보기도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참된 중보기도는 '나'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인생은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과 고민은 대부분 '나'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 때문에 고민하며 내 인생을 바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지막 간구가 끝난 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창18:33)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고 떠나셨습니다. 이것으로 대화는 끝이 나고 아브라함은 무척 가슴이 아팠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셨지만, 소돔과 고모라에는 의인이 없었기에 아브라함의 기도가 수포로 돌아간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중보기도의 능력은 살아 있었습니다. 그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세기19장29절을 보면 그 기도가 결코 허공을 치는 기도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하나님은 들으시지 않는 것 같아도 우리의 기도에 세밀하게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기도를 결코 땅에 흩어 버리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기억하시고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롯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없어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기억하사 롯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누군가 우리를 위하여 기도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기적이 일어납니다. 친구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기적이 일어납니다.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창세기18장은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과 그가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반부는 소돔의 구원을 위해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간절한 마음으로 타협의 간구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하나님에게 거듭 간청하여 소돔 성을 멸망시키지 않는 조건으로 의인 오십 명에서부터 시작하여 사십 오명, 사십 명, 삼십 명, 이십 명, 마침내 열 명까지 양보를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18:32)
당신은 아브라함의 끈질긴 간구 장면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습니까? 그가 하나님 앞에 너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중보기도자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하잘것없고 가치 없는 사람을 위해서 간구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간구로 인해 하나님에게 미움을 받으면 갈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붙잡고 수치당할 것을 각오하는 모험을 시작합니다. 참된 중보 기도자는 이처럼 수치를 무릅쓰고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아브라함의 수치스런 중보기도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참된 중보기도는 '나'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인생은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과 고민은 대부분 '나'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 때문에 고민하며 내 인생을 바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지막 간구가 끝난 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창18:33)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고 떠나셨습니다. 이것으로 대화는 끝이 나고 아브라함은 무척 가슴이 아팠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셨지만, 소돔과 고모라에는 의인이 없었기에 아브라함의 기도가 수포로 돌아간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중보기도의 능력은 살아 있었습니다. 그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세기19장29절을 보면 그 기도가 결코 허공을 치는 기도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하나님은 들으시지 않는 것 같아도 우리의 기도에 세밀하게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기도를 결코 땅에 흩어 버리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기억하시고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롯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없어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기억하사 롯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누군가 우리를 위하여 기도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기적이 일어납니다. 친구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기적이 일어납니다.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